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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미국 LA 코리아타운의 한 호텔에는 LA 다저스 수뇌진이 모두 모였습니다. 한국에서 온 스무 살 청년 박찬호의 다저스 입단식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하면서도 큰 기대보다는 신기함과 호기심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다저스는 왜 이 무명의 한국 청년과 계약을 했으며, 과연 그는 '메이저리그(MLB)'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 결과적으로 그는 한 시즌 평균 15승씩을 거두는 다저스의 특급 투수로 성장했고 동양계 최다인 124승을 거두고 은퇴했습니다.



< 박찬호 이후 MLB의 국내 아마 선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듯 류현진 이후 KBO 선수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

그리고 거의 20년이 지난 2013년 또 한 번의 코리안 돌풍이 다저스에 몰아치고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를 평정했지만 과연 MLB에서 통할 수 있을지의 물음표를 단 채 박찬호, 최희섭, 서재응에 이어 네 번째로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이 당당한 경쟁력을 과시하면서 MLB에서도 정상급의 선발 투수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17번 등판해 16번을 6이닝 이상 던졌고,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 경기)만 14번으로 리그 공동 4위의 꾸준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운이 따랐더라면 지금쯤 7승이 아니라 10승쯤 했을 수도 있는 좋은 내용의 경기를 꾸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20년 전 시작된 박찬호 선수의 다저스 계약과 성공의 '나비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MLB 팀에서 저마다 한국의 유망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김선우, 서재응, 봉중근, 김병현, 최희섭, 추신수 등의 뛰어난 기대주들이 박찬호의 뒤를 MLB의 유니폼을 입게 됐습니다. 그 후로 50명이 넘는 한국의 유망주들이 미국 프로팀과 계약해 태평양을 건넜지만 실제로 성공한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마이너리그에는 250개가 넘는 프로팀이 있고, 매년 7000명이 넘는 프로 선수들이 벌이는 메이저리그를 향한 치열한 경쟁을 뚫는다는 것은 실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희박한 성공률의 도전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형태의 '류현진 나비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선수를 찾기 위해서는 세계 어느 곳이라도 찾아다니는 MLB가 한국 프로야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WBC와 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통해 어느 정도는 KBO의 정상급 선수가 뛰어나다는 것을 인식은 했지만 류현진의 성공 가도로 그 기대치는 한층 높아졌습니다.
MLB 시카고 커브스의 스카우트로 일하고 있는 성민규씨는 "원래 관심이 많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한국 선수들을 본다."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류현진의 에이전트사 보라스코퍼레이션의 전승환 이사는 "처음에는 (류현진에 대한)부정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현진이의 활약으로 한국에서 잘하면 미국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국 선수들과 대한 관심도가 훨씬 광범위해졌다."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올 시즌 기대에 조금 못 미치지만 KIA 윤석민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고, 최근 들어는 삼성 마무리 오승환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었습니다. 오승환이 올 들어 슬라이더에 이어 체인지업까지 가끔 구사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SK의 3루수 최정이나 넥센의 유격수 강정호에 대한 관심도 꽤 커집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그들에 대한 평가와 MLB에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다소 의견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야수 중에는 가장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완성된 베테랑뿐 아니라 경쟁력이 있는 젊은 프로 선수들도 그들의 보고서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구위를 구사하는 사이드암, 언더스로우에 대한 관심이 특히 꽤 큽니다.



<kbo출신 정상급 선수에 대한 MLB의 관심을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류현진 효과는 KBO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까지 영향이 미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외국인 선수하면 미국에서 실패한 퇴물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프로에서 버티려면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또 비교적 나이도 젊은 외국인 선수들이 진출합니다. 과거에는 한국을 거쳐 일본야구로 가면 최상이었지만 이제는 MLB로 재진입하는 수련장으로 KBO가 새로운 역할을 할지도 모릅니다. 니퍼트나 리즈 같은 선수도 MLB 스카우트의 레이다에 포착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프로야구를 거친 한국의 정상급 선수의 MLB 진출은 활발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이러다보면 분명히 프로야구 위기설이 나옵니다. 당장 류현진의 이탈로 한화 이글스의 전력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가 있었더라면 한화가 지독한 연패 행진으로 시즌을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화의 팀 분위기를 홀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선수였고, 그가 빠져나가면서 남겨준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올해 최하위를 예약했습니다.
만약 앞으로 스타급 선수들이 계속 빠져나간다면 국내프로야구의 인기나 경쟁력이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프로야구 시장도 크게 성장하고 무리한 도전보다는 안정된 정착을 원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불합리한 FA 제도의 수정과, 선수와 구단이 얼굴 맞대고 감정싸움을 벌일 일 없는 에이전트 제도 도입 등 구단과 선수가 함께 갈 수 있는 대책 마련은 빨리 준비할수록 좋습니다. 꼭 태평양을 건너는 모험과 도전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안정된 분위기가 된다면 꼭 나가지 않아도 될 선수의 유출은 막을 수 있습니다.

류현진 같은 인기 스타가 최고의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도 크지만 국내 프로야구 무대도 소중하기 때문에 '류현진 나비 효과'를 보는 시선은 엇갈립니다.

Posted by 코딩하는 야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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