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 히어로즈 정민태 코치의 뒤늦은 은퇴식


2009년 8월 2일, LG와 히어로즈가 만난 목동구장에서 경기 전 정민태 투수코치의 뒤늦은 은퇴식이 열렸다. 

이 날 4시 20분부터 약 20분간 진행된 은퇴식에서는 8개 구단 선수들의 축하 메시지가 담긴 영상물이 상영됐으며 그가 가장 고마웠던 사람으로 꼽은 정동진 태평양 전 감독을 비롯,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에게 꽃다발과 기념품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1992년 1차 지명으로 태평양에 입단한 그는 태평양이 현대로 간판을 바꿔 단 96년부터 5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투구하며 1999년 20승을 따내는 등 리그를 지배했다. 5년 연속 200이닝 투구는 최동원과 정민태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

그 후 2년간의 일본 진출 끝에 2003년 자신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현대의 V3을 이끌었지만 현대가 해체되며 히어로즈가 창단될 때 KIA로 이적한 그는 부상과 노쇠화 속에 조용히 은퇴를 결정한다. 통산 성적은 1831이닝 124승 98패 3세이브 평균 자책점 3.48. 

이후 현대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김시진 감독의 부름으로 히어로즈의 투수코치로 부임하여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현대가 망했을 때 내 야구 인생도 끝이 났다’ 던 에이스가 ‘이제는 돌아와 다시 거울 앞에 선’ 셈이었다. 

*1988년 같은 날 롯데 최동원이 대구 삼성전에서 프로야구 최초로 매 이닝 탈삼진을 기록했다. 1996년 같은 날 OB 박철순이 타석에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MLB

# ‘퍼스트 파이브’ 월터 존슨의 강렬한 ML 데뷔전 

1907년 8월2일(현지시간), 워싱턴 세너터스와 디트로이트가 더블헤더를 치렀다. 워싱턴은 투타에서 전혀 내세울 것이 없었던 리그 최악의 팀. 1901년 창단한 이래 리그 6위가 최고 성적이었다(리그 최하위 2회). 반면, 디트로이트는 그 해 무서운 화력을 과시하며 리그 최고의 팀으로 우뚝 섰다.

당시 워싱턴의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조 캔틸론 감독은 더블헤더 1차전 투수로 19살의 어린 투수를 내보냈다. 약 1만여명이 모인 아메리칸리그파크(워싱턴 홈구장) 관중들은 특별한 기대 없이 경기를 지켜본 상황. 하지만 이 투수는 놀라운 호투를 선보이며, 디트로이트 타자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 타이 콥 “그저 ‘쉬익’하는 소리가 들릴 뿐”

특히 돋보였던 것은 폭발적인 빠른 공이었다. 그 경기에서 첫 득점을 뽑아낸 선수는 ML 역대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인 타이 콥이었다. 콥은 경기 후 "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그저 '쉬익'하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릴 뿐이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공을 지켜보니 정상적인 타격으로는 치기 힘들어보였다. 그래서 번트를 시도했는데, 아니나다를까. 그는 우리에게 많은 번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기는 결국 워싱턴의 2:3 패배로 끝이 났다. 모두에게 놀라움을 안긴 신인투수는 8이닝 3K 2실점(6안타 1볼넷)으로 첫 등판을 마무리. 8회 샘 크로포드에게 맞은 솔로홈런 한 방이 또 다른 아쉬움으로 남았다(크로포드는 ML 통산 3루타 1위로 역시 명예의 전당 입성자). 

* 마이크 헤이던 예언 “크게 이름 알릴 것”

그러나 데뷔전에서 배터리 호흡을 맞췄던 마이크 헤이던은, "분명 크게 이름을 알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헤이던의 예언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강팀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렀던 월터 존슨은, 이 날 자신에게 첫 실점을 안겼던 타이 콥과 함께 훗날 명예의 전당 '퍼스트 파이브'로 불리게 된다(나머지 3인은 베이브 루스, 호너스 와그너, 크리스티 매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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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코딩하는 야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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